은유와 조형    
  날짜 : 2009-12-26 00:00:00 조회수 :
 
  은유와 조형
- 왕형열의 근작

어떤 대상을 빌려 인간세계와 인간의 삶의 역정을 은유하는 경우는 흔히 있는 일이다. 특히 동양화에선 자연현상을 인간사회에 비유해온 오랜 관념의 역사가 있다. 자연과 인간이 구획되지 않는 동양의 자연관, 인생관이 그러한 관념을 더욱 가꾸어온 터이다. 왕형열이 새를 통해 “우리의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작가의 말)할려고 한 것도 같은 전통적 문맥에 기인함이라 할 수 있다.
왕형열이 새를 주제로 다루기 시작한 것은 97년 이후다. 지금도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으니까 7년 가까운 세월을 새를 다룬 셈이 된다. 왜 하필 새인가. 왜 하필 새를 통해 인간 삶을 은유할려고 했을까. 구체적인 내역은 파악할 수 없으나 새의 생태에서 반영되는 다양한 삶의 양태가 인간세계와 비유하는데 가장 적절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은유화된 갖가지 새들의 모습을 보면 혹한의 겨울 냇가에서 먹이를 찾아 기웃거리는 새, 고달픈 하루를 나타내는 희고 목이 긴 새가 있는데 모두 인간 삶의 고단함을 이기며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 속에는 행복과 기원, 부부간의 동행, 기다림, 사랑, 가족애 등 다양한 새의 표정이 나타난다.”
그가 새를 주제로 다루면서 <겨울나기>란 명제를 지속해온데는 혹독한 계절을 견뎌내는 연약한 새의 이미지를 혹독한 생을 영위해가는 인간세계에 그대로 대위시킨 내면이 있다. 새의 연약함과 부드러움이 강조되면 될수록 현실의 냉혹함은 더욱 극적으로 표상될 것이다. 새가 상징하는 자유의지가 현실의 비정함과 상충되면서 더욱 화면은 상황의 치열함을 구현하는 마당이 된다.
근작은 <겨울나기 이후>다. 이전의 겨울나기가 비유적, 상징적 요소가 강하게 반영된 것이라면 근작은 보다 조형적, 회화적 요소가 전면으로 부상함을 발견할 수 있다. 혹독한 한 시대를 건너오는 삶의 여정이 <겨울나기>로 반영되었다면, 근작은 새의 이미지가 보다 관념화된 비상의 이미지로 표상되면서 뚜렷한 시대적 분절을 느끼게 한다. 새를 빌려 자신과 자신의 가족과 주변의 삶을 은유해왔다면 이제는 새가 지닌 근원적 이미지로서의 비상과 그 비상으로 상징되는 자유의지의 갈구라는 보편성이 지배되기 시작한다. 어쩌면 그것은 현실에 메달렸던 작가의 태도가 더욱 고양된 정신의 비상으로 인해 극복되어가는 변화의 양상인지 모른다.
최근작에 두드러진 것은 화면에 대한 인식의 강화다. 화면은 단순한 이미지를 담는 자리도 일류전의 표상의 마당도 아닌 평면, 또는 표면이란 환원적의식으로 대신되어가고 있음이 그것이다. 예컨데 때때로 화면은 두 개로 분절되어 나타난다. 한 화면엔 풍경이 점경되는가 하면, 한면은 단색으로 처리된 평면이 놓인다. 두 개의 화면은 어떤 맥락도 갖지않는 단순한 대비로 치부되지만 때때로 새의 비상이 양면을 가로지르면서 하나의 화면으로 융화되어진다. 두 개의 면이 갖는 강한 대비에도 불구하고 화면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전체를 지향한다.
이 두 개의 화면은 상황과 조형이란 두 개의 문맥으로 파악되진다. 잠재된 풍경으로서의 상황이 존재하는가 하면 환원된 화면으로서의 조형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보면 그것은 현실과 이상의 대비적 양상일 수도 있으며 전통과 현대라는 상충하는 상황의 인식일 수도 있다. 따라서 수묵의 여운짙은 공기 속에 하얗게 표백된 새의 이미지는 전통의 깊이와 현대의 치열한 의식의 공존이 만들어내는 작가의 내면고백 또는 내면풍경인지도 모른다. “전통적인 수묵화를 어떻게 현대적 조형방법으로 표현해내느냐”(작가의 말)는 오랜 작가의 화두가 어느 결실을 향해가면서 토로해놓는 자기고백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국화의 실험이 여러 방법에 의해 전개되고있는 현실에 왕형열의 상황에 대한 의식과 조형의 여러 시도는 더욱 풍요로운 자양으로 평가되어질 것이다.

오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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